요즘 대학과 인연을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찾게 된다. 도서관 장서라는 것이 신간보다는 오래된 책들을 많이 보관하는 법이라 대개는 마음을 울리는 책들을 자주 찾게 된다. 박완서의 <호미>도 인생의 말년인 77세에 출간된 책이다. 글의 소재가 된 일상의 작은 이야기에서 삶을 관조하는 태도와 함께 영혼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봄꽃이 피는 마당에서 꽃과 나무에게 말을 거는 이야기에서 글이 시작된다. 목련에게는 엄동설한에 찬란한 봄을 꿈꾸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을 걸고, 일년초 씨를 뿌릴 때는 흙을 정성스럽게 도닥이면서 말을 건다. 싹 트면 반갑다고, 꽃 피면 어머머, 예쁘다고 소리내어 인사한다. 말 없는 식물 앞에서 수다쟁이가 되는 작가가 노년에 만나는 세상은 기쁨과 경탄으로 가득차 있다. 하나하나 모두 어질고 따뜻하며 위안이 되는 글이다.한 평생 살아온 시간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모아 상연한다면 얼마의 분량이 될까? 고작 반나절 동안 연속상연해도 시간이 남을 짧은 분량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물론 그 속에는 한 평생을 같이 살아온 가족과 이웃과 자연의 모습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쩌면 허망하기 그지없는 삶이지만 그 안에는 자연의 순환이라는 대원칙이 있고 이젠 담담하게 다가오는 운명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맑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던 작가가 추억하는 주변사람들 모습 역시 순수하고 아름답다. 시어머니 되는 분은 종교도 없고 학교도 안 다녔지만 인간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분으로 작가는 기억한다. "기소불역을 물시어인하라"고 가르쳤던 할아버지는 일꾼이 게으르게 굴었다고 품삯을 깍는 일을 하지 않는 따뜻한 분이었다. 역사학자 이이화, 시조시인 김상옥, 소설가 이문구 선생 이야기에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연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산문집 제목인 <호미>를 보면서 흙과 함께 살아온 작가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의 소재도 대부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담겼다. 이야기 하나하나는 자연과 함께 노닐면서 무심하한 듯 명랑하게 속삭이는 말들이다.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자연을 닮았느냐에 따라 행복감이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부 이후 5년 만에 독자들에게 내놓는 신작 산문집.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철살인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경건한 고백처럼, 호미 는 작가 주변의 자연과 사람들을 한없는 인내의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건져올린 경탄과 기쁨이자 애정과 감사다.
유독 맑고 아름다웠던 영혼들을 가슴 찡하게 추억하고 있는 이번 산문집은 세상에 대해 더없이 너그러웠던 그녀 주변의, 그녀보다 앞서 세상을 살다갔거나 여전히 우인(友人)으로 존재하는 어른들의 삶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하는 상상력의 힘을 우리에게 불어넣어준다.
어느덧 일흔일곱에 이른 소설가 박완서가 겪은 애증과 애환, 허방과 나락, 작은 행운과 기적들… 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산문집. 애증과 나락마저도 박완서의 깊은 성찰을 통해, 묵직한 울림이 되어 전해져온다.
책머리에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돌이켜보니 자연이 한 일은 다 옳았다
다 지나간다
만추
꽃 출석부 1
꽃 출석부 2
시작과 종말
호미 예찬
흘길 예찬
산이여 나무여
접시꽃 그대
입시추위
두 친구
우리가 서로에게 구인이 된다면
그리운 침묵
내 생애에서 가장 긴 8월
그리운 침묵
도대체 난 어떤 인간일까
좋은 일 하기의 어려움
야무진 꿈
운수 안 좋은 날
냉동 고구마
노망이려니 하고 듣소
말의 힘
내가 넘은 38선
한심한 피서법
상투 튼 진보
공중에 붕 뜬 길
초여름 망필(妄筆)
딸의 아빠, 아들의 엄마
멈출 수는 없네
감개무량
그가 나를 돌아보았네
그는 누구인가
음식 이야기
내 소설 속의 식민지시대
그가 나를 돌아보았네
내가 문을 열어주마
내가 문을 열어주마
우리 엄마의 초상
엄마의 마지막 유머
평범한 기인
중신아비
복 많은 사람
김상옥 선생님을 기리며
이문구 선생을 보내며
딸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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