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서 의 저녁이 아름다운 집.
이 책을 들고 난 잠깐 혼란에 빠졌다. 낯익은 작가인데, 프로필을 보니 내가 읽은 작품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분명히 난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이 수록된 책에서 읽었던 것 같기도 한데....
작가 구효서는 사회와 권력의 횡포를 고발하는 작품을 즐겨 써 왔으나, 지금은 일상의 소소함과 눈물겨운 삶의 풍경를 그리는 작품들을 쓴다고 한다.
장편소설은 긴 호흡으로 읽으면 되지만 단편소설을 읽을 때는 짧은 내용속에 들어 있는 은유적인 생각들을 읽어야 하기에 장편소설보다 더 깊은 감동이 빨리 다가온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작품이 남긴내용의 감흥이끝나기도 전에 바로 다음 작품을 읽기때문에 꼭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작품해설이 있을 경우에 작품해설까지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저녁이 아름다운 집 은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승경 은 작가가 이미 발표한 나가사키 파파 라는 작품을 쓰기 위해 체류했던 나가사키가 이야기의 무대이다. 다테노 마을에서 알게된 일본 여성 하루미와의 만남을 통해, 그녀가 장애를 가진 재일동포와 결혼한 사연, 20년 묵은 장에 담근 후안테절임 이야기,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었던 야마가와가 피폭 당시 마을의 산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때문에 마을이 기운을 잃자 혼자 힘으로 인공호수 긴린코를 만들어 마을이 균형을 잡은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승경 은 나라쓰케라는 절임 식품에 대한 이야기가 한일간의 음식 교류에 관한 이야기로 그칠 수 있고, 긴린코라는 아름다운 호수에 관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풍경을 소개하는 정도의 글로 그칠 수 있는 것을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하루미의 이야기까지 곁들여서 재구성하고 소설가의 시선까지 슬쩍 숨겨 넣으면서 구효서만의 세련된 소설을 만든다.
TV 겹쳐 를 읽으면서는 작가가 살았던 시대가 바로 내가 살았던 시대임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아마, 요즘의 시대가 읽는다면 내가 최만식의 탁류 를 읽으면서 느꼈던 격세지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당시의 테레비는 부의 상징이고 사치품이었으며, 사람들에게 보는 기쁨을 가져다 준 그 시대를 떠올릴 때 꼭 이야기해야하는 것일 것이다.
고3때 포크레인과의 접촉사고로 열두 살 지능으로 퇴행해 버린 남동생이 두 살위의 누나의 죽음을 통해 여공 출신의 누나가 살았던 시대의 가난과 어두웠던 현실을 생각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농과 서울 상경으로 시작되는 서울 변두리 구로 공단 주변의 삶, 그리고 힘든 생활속에 흔들리고 겹치는 테레비이야기와 함께들려준다.
명두 는 살아 150년, 죽어 20년을 한자리에 서서 세상을 지켜본 굴참나무의 시점으로 한국전쟁 이후 50여 년의 세월이 스쳐간 어느 궁핍한 빈촌의 삶과 죽음의 드라마를 그려낸다. 찢어지는 가난이 지배했던 이 빈촌의 세월은 “죽음이 끝없이 생명을 만들고, 삶은 끝없이 죽음을 낳았다”라는 말로 요약될 법하다.
여기에서 죽음 은 명두집이라는 한 개인 뿐만아닌 그 마을 사람, 역사로 까지 확장된다. 단편소설에서는 다루기 힘든 긴 역사의 시간과 무속의 세계까지 끌어 들여서 삶과 죽음이 서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선악의 경계없는 자연의 리듬이 궁극적으로는 지금 이 시간과 인간사의 현실에도 개재해 있음을 이야기해 준다.
표제작 저녁이 아름다운 집 은 죽음의 자리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내용은시골에 구입한 집터 한쪽에 산소가 있어서 그 산소의 주인에게 이장을 해 갈 것을 요구하나 잘 이루어지지 않는데도 발단이 된다. 아내는 마당쪽에 놓이게 될 산소를 깨림직하게 생각하는데 어느날 “죽음이야 늘 도처에 있는 건데 마당 곁에 좀 있은들 어때요”하는 말로 생각을 바꾼다.
그런데 이 말이 각별한 울림을 갖는 것은, 이 순간 아내는 자신의 남편에게 임박해 있는 죽음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도처에 있다는 인식을 마음 한편에 품을 수는 있겠지만, 그 죽음이 자신 혹은 가까운 이에게 닥쳤을 때, 그런 인식은 무력해지게 마련이다. 「저녁이 아름다운 집」은 그 메우기 힘든 낙차 사이에 인간의 애정과 배려로 가능한 무언가는 없는지 안타깝게 물어보는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조율 화사 사자월 전별 막내고모 가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죽음 앞에 선’또는 ‘죽음과 함께하는’ 삶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출판사의 책소개에 제시된 글처럼
삶의 그늘에 대한 작가의 속깊은 응시가 역설적으로 되비추는 삶의 환한 자리들!
이 한마디가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황순원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수상작가 구효서의 신작소설집
삶의 그늘에 대한 작가의 속깊은 응시가 역설적으로 되비추는 삶의 환한 자리들!
2006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명두」를 비롯하여, 1인칭 여성 화자를 통해 구효서의 독보적인 다감함과 유연함, 순도 높은 산문과 깊이 있는 세계관이 유감없이 드러난 2007년 허균문학작가상 수상작 「조율-피아노 월인천강지곡」 외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작들은 다름 아닌 인간 진실의 만화경에서 하나같이 놓치기 아까운 세밀하고 소중한 삽화들이며, ‘죽음 앞에 선’ 혹은 ‘죽음과 함께하는’ 삶의 풍경이 여기저기, 때로는 안타까운 애도와 함께 때로는 조용한 수락과 함께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죽음과 삶의 그늘에 대한 작가의 속깊은 응시가 역설적으로 되비추는 삶의 환한 자리들이 새롭게 구효서 소설의 진경을 이루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표제작 「저녁이 아름다운 집」은 죽음의 자리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잔잔하게 녹아 있는 작품이다. 사정은 작중 ‘그’의 아내가 시골 집터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이웃 주민의 산소 이장을 고집하다 마음을 바꾸며 내놓는 죽음이야 늘 도처에 있는 건데 마당 곁에 좀 있은들 어때요 하는 말 속에 압축되어 있다. 그런데 이 말이 각별한 울림을 갖는 것은, 이 순간 아내는 자신의 남편에게 임박해 있는 죽음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도처에 있다는 인식을 마음 한편에 품을 수는 있겠지만, 그 죽음이 자신 혹은 가까운 이에게 닥쳤을 때, 그런 인식은 무력해지게 마련이다. 「저녁이 아름다운 집」은 그 메우기 힘든 낙차 사이에 인간의 애정과 배려로 가능한 무언가는 없는지 안타깝게 물어보는 작품이랄 수 있다.
승경
조율-피아노 월인천강지곡(2007년 허균문학작가상 수상)
화사-스며라, 배암!
명두(2006년 황순원문학상 수상)
사자월-When the love falls.
TV, 겹쳐
저녁이 아름다운 집
전별-자전거로 남은 사내
막내고모
작품 해설(정홍수)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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