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시읽기노래책시렁 123《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이규리문학동네2014.5.10. 누구한테나 꽃치마가 어울립니다. 둘러 보면 알아요. 꽃치마가 어울리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꽃바지가 어여쁩니다. 꿰어 보면 되어요. 꽃바지가 어여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언제 어디에서나 꽃차림이 될 만합니다. 스스로 꽃이 되고, 새롭게 꽃빛을 나누며, 새삼스레 꽃노래로 흐드러지면서 모든 앙금이며 멍울을 녹일 만합니다.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를 읽으면 꽃차림을 하려다가 수줍게 돌아서는, 자꾸 남 눈치를 보는, 이러다가 스스로 멍이 들려고 하는 소근말이 흐르는구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나를 보는 눈’이 아니라면 다른 눈에 휘둘리기 좋겠지요. ‘남을 보는 눈’이 될 적에는 내 꽃치마가 어설프다고 여길 만하겠지요. 우리가 언제나 ‘나를 보는 눈’으로 간다면 물결에 휩쓸리지 않아요. 물결을 타면서 까르르 노래합니다. 우리가 늘 ‘남을 보는 눈’으로 간다면 잔물결에도 꽈당 넘어집니다. 물결을 탈 엄두를 못 내고, 주눅이 들어 그만 노래를 깡그리 잊고 말아요. 눈길을 가다듬기에 삶은 노래로 피어나고, 이 노래는 가볍게 바람이 되어 온누리를 밝힙니다. 따로 온힘을 내야 하지 않습니다. 온눈이 되어 스스로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라면 모두 꽃이 되고, 노래가 되니, 흉도 빌미도 티끌도 없습니다. ㅅㄴㄹ어떤 일로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 자꾸 웃으라 했네 / 거듭, 웃으라 주문을 했네 / 울고 싶었네 / 아니라 아니라는데 내 말을 나만 듣고 있었네 (내색/18쪽)어제 본 게 영화였을까 / 비였을까 // 애써 받쳐도 한쪽 어깨는 내 어깨가 아니고 / 한마음도, 내 마음이 아니다 (국지성 호우/30쪽)
저마다의 사연으로 내파(內波)되어 있는 삶의 실제 상황들 을 하나의 중심으로 환원하는 보편성에 저항하며 각 존재의 개별성을 확보해왔던 이규리 시인의 세번째 시집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가 문학동네시인선 54번으로 출간되었다.
뒷모습 (2006) 이후 8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는 일종의 독특한 미학으로 담백함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시 쉰여덟 편이 묶여 있다. 관성적으로 스쳐지나가기 쉬운 사소한 풍경에서 포착한 삶의 비의를 개성적인 시적 풍경으로 재구성했던 시인의 애정 어린 관찰력은 이번 시집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시인은 언어가 주는 소통의 착시 효과를 경계하면서 시로 재구축할 수 있는 삶의 진실을 섬세하게 더듬어나간다.
시인의 말
1부 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생일
특별한 일
혀
펭귄 시각
저, 저, 하는 사이에
해마다 꽃무릇
내색
몸이 커서 수박,
수레국화
그늘의 맛
결혼식
나무가 나무를 모르고
초록 물결 사이 드문드문 비치는 보랏빛 오동꽃 보며
껍질째 먹는 사과
뭐, 그냥 간다
국지성 호우
벚꽃이 달아난다
달빛했으므로
우리는 그곳을 2층이라 부른다
당신이라는 모든 매미
2부 빌려온 빛에 지나지 않습니다
커다란 창
때가 되면
허공은 가지를
폭우
유리의 집
많은 물
뒹구는 대갈통
저 푸른 초원
가출
펭귄들
조등(弔燈)
동파
풍경
공중 무덤
관광버스
분교
발
대구선(線),
파계사에서 생각이
3부 멀리 있는 것에 관하여서입니다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웃지 마세요 당신,
선물
11월
사라진 왕국
꽃나무의 미열
예의
아직도 숨바꼭질하는 꿈을 꾼다
봉봉 한라봉
변두리
청송 사과
들어내다
나의 고전주의
현관문 나서다가
어느 날 라디오에서
비유법
선글라스
락스 한 방울
불안도 꽃
해설 | 러블리 규리씨
| 박상수(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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